제목: 빌립보서 1:21-30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설교: 담임 김신영 목사님

빌립보서 1:21-30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명예, 출세, 부자가 되기 위해서, 내가 잘났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어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확실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겪은 모든 고난과 당시의 투옥된 상태조차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모세의 정탐꾼들인 여호수아와 갈렙의 긍정적인 보고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출애굽 중에 10가지 재앙과, 그 중에서도 이스라엘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십니까?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호수아, 갈렙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꼭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면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복음의 진보를 일으킬 수 있습니까?

첫번째는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가 먼저입니다. 왜냐하면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의 사고를 바꿔주시고 전환시켜주십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을 다짐하는 각오가 마음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오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전력 투구를 한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교회, 일 그리고 가정만 쳇바퀴 도는 삶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 성도의 삶 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죽는 것이나 사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그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만이 그의 삶의 중요한 점 입니다. (27절) 부터는 이것을 어떻게 삶에 적용하는 것인지 알려 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에너지 쓰는 것만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삶 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들끼리 시기, 질투하는데 에너지를 낭비를 하기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뛰어 나가서 하늘 나라를 전파하는데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성도가 병들어 있으면 제대로 설 수가 없고 교회 자체가 망가집니다. 서로가 병든 성도를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의 개인주의적인 기독교인 생활이 아니라, 내가 만난 예수님을 간증하며 제대로 된 신앙 생활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병들면 재생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두번째는 전도할 때 대적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때 상대가 어떤 반응을 할까 두려워하십니까? 상대방의 반응은 나에게 하는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게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구원의 증거입니다. 성경에는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수천 수만이 다윗을 둘러쌌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믿음을 가질 때 세상은 오히려 놀라거나 두려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특권과 또한 고난 받는 특권도 주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 받는 것은 구원의 증거입니다. 이것은 특별한 보상이 따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적용을 하는 성도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며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을 소망할 때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고난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인내를 주며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고 장차 영원한 영광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세상은 지금 코로나 펜데믹에 두려움으로 어찌할 줄 모르고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어합니다. 그러한 사람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고, 그들이 일어나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적용: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십니까? 이것을 묵상하며 한 가정 전도하는 한 주 되십시오.

JoeunMokcha GoodShepe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