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예수님의 권위 마가복음1: 29-39

설교: 담임목사 김신영

마가복음 1장 29-39절

설교요약: 홍신애

예수님의 권위는 우리에게도 주신 권위입니다.

당시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모든 행동과 말씀 하나하나가 권위 그 자체였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무슨 권한으로 이러한 일들을 하느냐고 했을 때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사람인가 아니면 세상의 사람인가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군중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세례 요한에 대해 정해진 대답을 하기를 두려워했고 그래서 예수님도 그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세리와 창녀와 같은 자들은 자신들이 죄인임을 알기 때문에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먼저 천국에 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신적 권위를 가지고 계셨던 예수님은 세상에서 독창적이고 적극적인 권위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전통이나 인습에 따른 권위를 가지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계셨던 예수님처럼 성도들도 이 권위를 가지고 예수님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길로 걸어간다면 복된 길로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 빛 된 길은 바로 자신의 선택입니다. 그러니 성도는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 하나님 안에서 잘 고민해야 합니다.

당시 종교의 지도자들은 이래라 저래라 가르치기만 하면서 행동으로 모범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몸소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진리로 이끄는 실천은 진심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도 자신이 깨달은 것을 실천함으로 세상에게 예수님의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진실한 인격으로 승화되는지 보여줄 수 밖에 없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크신 긍휼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환자들을 불쌍히 여기심은 그 당시에 환자들은 예배를 드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리와 창녀, 몸이 아픈 사람들을 찾아가시고 어떻게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빛을 그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신적이고 유교적인 삶을 살던 우리 조상들을 예수님의 보혈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런데 미국에까지 와서 조상들의 삶을 반복하며 그것이 옳다고 한다면 거듭난 새로운 창조물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호적은 하늘 나라로 옮겨진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 앞에서 망설임이 있고,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의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만 정죄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각양 육신의 질병을 가진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메시아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호소하는 것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은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그러니 성도도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속에서 소망이 없고 우울하고 좌절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잡아주셨던 예수님처럼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우리 교인들은 좋은 목자교회에 오기 전에 살던 삶과 지금의 삶과 비교하며 어떻게 자신이 스스로 변했는지 그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커피나 식사를 성도가 대접하며 진솔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성도가 해야 할 일 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믿음을 기도를 해야 합니다. 많은 교회가 있다고 해서 나는 어디 교회든 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 라고 생각한다면 너무나 안일한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베드로의 장모 치유 이후 많은 병자와 귀신들린 자들을 예수님께 데려 왔습니다. 심지어 귀신들은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밤이 맞도록 치유를 하신 예수님은 홀로 하나님께 기도하시러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를 전혀 다르게 착각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한 이후에 주님의 수난을 반대하던 베드로를 보면 적나라하게 보여집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도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내 몸, 내 생각, 내 감정은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나를 주장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인격으로 변화되어야 천국에 갑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해야만 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또한 무엇이 목적인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흔들리는 믿음으로이리 재고 저리 재는 것이 아니라 결단해야 합니다. 결단 없이는 중생할 수도 거듭날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절대적인 권능과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또한 이것을 주님만이 성도에게 주셨습니다.

적용: 나태하거나 방종하는 일들이 없이 주님을 맞이하는 길로 달려 나가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